내게 주어진 역할과 내가 하고 싶은 일
원하는 일만 하면서 자유롭게 살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살아가다 보면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보단 내게 주어진 역할을 수행하는 것을 더 많이 하게 된다. 착한 자식이 되고 도리를 다 해야 하고 회사에 다니면 성실한 직원이 되어 거기에 맞춰 일을 한다. 그 안에서 행복한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 것인가. 아마 많지 않을 것이다. 빌리 엘리어트도 돌아가신 어머니와 생계와 파업으로 바쁜 형, 아버지를 대신해 치매 할머니를 돌보는 착한 아들이다. 빌리의 미래를 위해 아버지는 힘든 형편에도 빌리에게 권투를 배우게 해 준다. 기술이 없어도 밥을 벌어먹는 건 권투선수라고 생각해서 이다. 하지만 빌리는 누굴 때리는 데는 영 소질도 흥미도 없다. 그러다 사정이 생겨 체육관의 일부를 발레학원이 같이 빌려 쓰게 된다. 권투를 하지만 눈과 귀는 어느새 발레를 쫒고 있는 빌리. 말로는 남자는 발레 같은 건 안 한다 하지만 몸과 마음은 다르게 행동한다. 자꾸 흥미를 보이는 빌리에게 발레선생님인 윌킨슨 부인은 발레수업을 들을 수 있게 해 준다. 어색해하던 빌리는 배울수록 점점 더 잘하고 싶고 욕심을 내게 된다. 하지만 아버지에게 발레 수업을 듣는다는 걸 들키면서 빌리의 작은 행복도 끝이 나는 것 같았다.
진정한 아버지의 역할은 무엇일까?
영화 속 빌리의 아버지 재키 엘리어트는 매우 가부장적인 아버지이다.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으며 힘들어도 내색하지 않으려 한다. 하지만 상황은 좋지 않다. 파업으로 당장 수입은 없고 첫째 아들은 과격한 파업시위에 잡혀가기도 한다. 둘째 아들 빌리는 기껏 힘든 상황에 권투 학원을 보내 놨더니 수업을 째고 몰래 발레를 배운다는 것이다. 화가 머리끝까지 난 재키는 빌리에게 그런 건 여자들이나 하는 짓이고 당장 그만두라고 소리치고 때리지만 빌리의 반항심만 커질 뿐이었다. 첫째 아들 토니는 파업시위에 너무 몰입해 과격한 행동을 일삼자 위험하다고 말리지만 결국 몸싸움에 밀릴 뿐이다. 아버지 재키는 항상 열심히 했으나 가족은 행복과 거리가 멀어 보인다. 재키가 가족을 등한시하거나 술독에 빠져 가족을 등한시하지도 않았다. 그렇다면 아버지는 돈을 잘 벌고, 강한 모습을 보이기만 하면 되는가? 자식의 미래를 위해서라며 본인이 생각한 길을 강요해도 괜찮은 것인가? 빌리는 아버지의 반대에 화가 나 폭발적으로 아버지 앞에서 춤을 춘다. 그 격렬한 춤을 보고 빌리는 처음으로 본인이 잘못한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내가 생각한 것만이 정답이 아닐 수 있음을 깨닫고 빌리에게 재능이 있는데 못 알아본 걸지도 모른다 생각한다. 그렇게 빌리의 꿈을 지원해주기 위해 파업도 포기하고 탄광일을 하기 위해 지하로 내려간다. 파업을 포기하는 아버지를 본 토니가 처음에는 말렸으나 재키의 절규를 듣고 같이 파업을 포기한다. 저 아이는 아직 어리다고. 빛나는 재능이 있으며 우리와 같은 길을 걷게 할 수 없다고. 모든 걸 포기한 듯한 두 사람의 얼굴이 쉽사리 잊히지 않는다. 그렇게 빌리는 발레를 다시 시작할 수 있게 된다.
또 다른 역할, 성의 역할이란 있는가
빌리의 친구 또한 역할에 대해 생각해 볼 만하다. 빌리의 가장 친한 친구인 마이클은 유일하게 빌리를 이해해주고 지지해준다. 여자들만 발레를 하는 거라는 편견속에서 신경 쓰지 말고 계속하라고 이야기해주는 친구다. 그런 마이클도 남모를 비밀이 있었는데 바로 누나나 엄마의 옷을 입어보며 화장품을 바르는 것이다. 처음에 그 모습을 본 빌리는 놀라지만 이내 친구의 진짜 모습을 받아들인다. 친구가 편견에 사로잡히지 않았던 이유는 그 친구 또한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자신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남자의 모습, 여자의 모습에 갇히지 않고 자신의 모습을 찾고자 했던 마이클은 나중에 수석 발레리노가 된 빌리의 무대를 보러 올 때 다시 나온다. 재키와 토니가 빌리의 공연을 보러 갔을 때 옆자리에 앉은 어릴 때의 모습과 사뭇 다른 마이클을 보고 놀라는 장면이 나온다. 그때 마이클은 옆에 멋있는 애인과 같이 있다. 그 모습을 보고 다시 한번 성 역할과 정체성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진짜 행복한 내 모습은 무엇일까?
진정한 행복을 찾아서
빌리는 눈부시게 아름다운 수석 발레리노가 된다. 그 과정은 모두 행복하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권투를 하며 아버지가 권한 길을 계속 갔던 것보다 자신이 하고싶었던 발레를 계속한 것이 더 빌리 답게 사는 것 아니었을까? 높게 뛴 빌리의 점프에서 그간의 고생을 모두 딛고 힘차게 도약하는 백조를 보았다. 나답게 행복한 길을 사는 것. 그리고 그것은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나 환경에 의해 포기하지 않는 것을 생각해 보게 된다. 그리고 부모가 된다면 그런 길을 지지해주는 부모가 되고 싶다. 재키처럼 말이다. 그리고 재키 또한 행복한 길을 찾길 바란다. 자식이 행복하다고 부모가 다 행복할 수는 없으니깐. 부모의 역할에만 모든 걸 쏟아붓는 게 아니라 부모도 행복해야 자식도 그 길을 행복하게 걸어갈 수 있을 것이다. 많은 여운이 남는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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